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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을 앞둔 아버지께서 가장 아끼던 생일선물





얼마 전 아버지의 생신이셨습니다.

벌써 일흔일곱이 되셨네요. 여느 때처럼 서울로 올라오시도록 했습니다. 애들에, 직장에, 이런 저런 이유로 합리화하며 자주 못내려가는 구실로 삼는 부끄러운 자식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도 손주들을 더 편한 환경에서 오래도록 보실 수 있는 실질적인 장점도 있다고 또 다른 합리화를 하곤 하죠 ^^


어머니를 일찍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고는 참 시간 미루지 말고 아버지께 좋은 시간들 많이 만들어드려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거기에도 자식의 구실들은 들러 붙습니다. 많이 죄송스럽네요.


일흔일곱번째 생신...

그런 구실 투성이인 자식에게 아버지의 생신은 짐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미천한 돌파구 역할을 합니다. 생신을 챙겨드린다는 것 하나로 말이죠.

생신 선물을 챙겨드리고 용돈을 챙겨드리고 하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던 무거움을 내려놓는 것, 사실 자식이 편하자고 하는 겁니다. 팔순이 다 되어가시는 분께 그런 것들이 과연 웃음을 드릴 수 있을까요?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정말 그런 것은 별 의미 없는 것들일 겁니다.


혼자 계시는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정말로 조금이나마 잊어버리시게끔 같이 있어드리고 손주 녀석들의 재롱을 긴 시간 보게 해드리는 것만큼 쉬우면서도 의미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식된 녀석의 무거움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그런 상징적인 선물을 고민하게 되는데요. 몇년 전부터는 주로 용돈만을 드리다보니 이번에도 큰 고민을 안하고 있었는데, 위와 같은 생각이 불현듯 들더라구요 






그래, 아이들도 방학이지?


긴급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올라오시는 날 아침, 아이들과 제작회의에 들어갑니다. "할아버지 생신 카드 만들기" 프로젝트 !!


가게에서 파는 작은 카드보다는 직접 카드를 만들자

그리고 기왕이면 큰 녀석으로, 롤링 페이퍼 형식처럼 우리 가족들의 모든 한마디를 담아보자!


사실 제가 기획하고 전군 출정하라 명령만 내린 셈이지요 ^^


일단 이미지 부분 //


색연필과 크레파스를 들고는 아무 그림이나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 생신이니 드리고 싶은거 그려도 되고 아무거나 좋다 ~

막내 녀석은 자꾸 할아버지가 구구단을 외우게 한다고 구구단 소재로 만화를 그리고,

둘째 녀석은 그래도 생신이라고 생일 케잌 이미지를 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첫째 녀석은 건강약 그림을 그리더라구요. 할아버지 오래 사시라고 그린다고...  (순간 살짝 울컥 했습니다. 기특해서 ^^)


 



큰 도화지의 한쪽 면에는 이렇게 카드 이미지를 마음껏 그려넣고 (저도 하트 큰 거 하나 그렸네요 ^^)

그 뒷면에는 이제 메시지를 적을 차례입니다


여기에도 역시 애들보고 마음대로 써보라고 했어요. 물론 저도 적고 와이프도 적었죠.

적고 보니 저희 부부보다도 아이들이 훨씬 더 길게 편지를 적었더라구요.


건강하시라는 인사말 외에도, 둘째 녀석은 자기가 돈이 없어서 선물은 못샀으니 용돈도 달라는 말을 적었더군요. (이거 보고 우리 빵 터졌다는 ㅋㅋ)

암튼 그런 솔직한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이니 제법 다섯 식구지만 볼만한 롤링페이퍼 카드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냥 두번 툭툭 접어서는 저녁에 아버지와 케잌을 함께 하며 전달해드렸습니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 아이스크림 케잌과 함께 한 자리여서 다소 어수선하기도 한 상황이었는데, 정말 거짓말 안하고 단어 하나라도 놓칠세라 한올 한올 정성스럽게 읽으시더라구요. 그러면서 당신 입으로도 지금까지 받은 그 어떤 생일 선물보다도 이게 좋다며 너무 좋아하시는 겁니다. 표현 잘 못하시는 아버지가 이렇게 얘기하시는 거 정말 오랜만에 봤습니다.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너무 고맙다고 하시면서 정말 곱게 가지고 올라오신 가방에 넣으시더라구요...


물론 용돈도 드렸지만 그건 주인공은 커녕 단역도 되지 않을 정도의 비중이었습니다.


저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며, 왜 이걸... 아무것도 아닌 이런걸... 불과 1시간 정도면 되는 이걸 왜 지금까지 못드렸나 싶더라구요. 보람된 기쁨과 함께 가슴을 치는 자책감도 함께 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이제 와서야 받게 해드린 자식... 그 알량한 짐 잠깐 덜겠다며 선물이나 용돈 정도만 고민하던 자식... 참 못났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동시에 이런 느낌 한번 못드리고 떠나 보낸 어머니도 많이 생각이 났구요...



어려운 것 없더라구요

나이 드신 아버지께 드리는 선물...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이런 마음이 담긴 가족들의 편지, 지금이라도 한번 준비해보시면 어떨까요?


아이들이 다시 그 큰 카드를 만질려고 하니 손사레를 치시며 행여나 훼손될까 아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덧글

완성작 사진은 안찍어뒀네요 ^^ 아마 내려가서 확인하라는 의미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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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헝ㄱㅎㄴ M/D Reply

    이용약관위배로 관리자 삭제된 댓글입니다.

    • BlogIcon bruce ✈ M/D

      저 착하긴 합니다만... 서태지를 소화 못하신다면 곤란할 듯 합니다